하루 임대료 3천만 원, 성수동이 팝업의 수도가 된 이유

가로수길과 경리단길은 졌는데 성수동 팝업은 왜 아직 뜨거운가

성수동 팝업 상권이 들어선 성수이로 사거리 전경, 왼쪽에 만원 균일가 빈티지 매장과 인형뽑기 가게, 오른쪽에 프라다 임시 구조물 매장이 마주 보고 있다
성수이로 사거리. 왼쪽은 만 원 균일가 빈티지 매장, 오른쪽은 프라다.

성수이로 사거리에 서면 한 화면에 두 개의 성수동이 보인다. 왼쪽에는 전 품목 만 원짜리 빈티지 매장, 오른쪽에는 프라다. 그 사이를 쇼핑백을 든 사람들이 건넌다.

이 풍경이 낯설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10년 전 가로수길이 그랬고, 경리단길이 그랬다.

낡은 동네에 감각 있는 가게가 들어온다. 사람이 몰린다. 임대료가 오른다. 그 감각을 만든 사람들이 먼저 떠난다. 그리고 상권은 조용히 식는다.

성수동 팝업은 지금 그 궤적의 어디쯤에 서 있을까.

공장 동네였다

이야기는 준공업지대에서 시작한다.

2000년대 초까지 성수동은 서울 동북부의 대표적인 공장 동네였다. 수제화, 인쇄, 금속, 소규모 제조업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저층 공장과 창고가 거리를 채웠다.

화려할 일이 없는 동네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 동네가 재건축으로 지워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서울의 다른 낡은 지역들이 아파트로 갈아엎히는 동안, 성수동의 공장과 창고는 그 자리에 남아 용도만 바꿨다.

유럽의 도시재생과 닮은 방식이다. 건물을 부수는 대신, 껍데기를 남기고 안을 바꾼다.

대림창고 다이닝 내부 통로, 천장에 노출된 철골 트러스와 배관 덕트, 한쪽에 쌓인 장작더미
대림창고 내부. 노출된 철골 트러스와 덕트가 그대로 남아 있다.
성수동 셀렉트숍 BOUNDARY 외벽, 오래된 벽돌과 새로 메운 벽돌의 색 차이가 드러나고 NEW OPEN 포스터가 붙어 있다
옛 벽돌과 새로 메운 벽돌의 색이 다르다. 그 위에 브랜드가 얹힌다.

성수동 팝업, 왜 하필 여기였나

첫째, 공간의 조건이다.

공장 건물은 층고가 높고 기둥 사이가 넓다. 무엇을 세우든 들어간다. 브랜드가 한 달짜리 세트를 짓기에 이보다 좋은 골격이 없다.

둘째, 초기 임대료가 쌌다. 강남에서 감당할 수 없는 실험을 성수동에서는 할 수 있었다.

셋째, 그리고 이것이 핵심인데, 낡음 자체가 상품이 되었다.

노출된 콘크리트 보, 녹슨 철문, 색이 다른 벽돌. 브랜드는 이 질감을 돈 주고 살 수 없다. 성수동에는 그것이 이미 있었다.

탬버린즈 성수 매장 외관, 철거된 옛 건물의 콘크리트 골조가 노출된 상태로 브랜드 로고만 부착되어 있다
옛 건물의 콘크리트 골조를 그대로 두고 로고만 붙였다.

탬버린즈 매장을 보면 이 문법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옛 건물의 콘크리트 골조를 그대로 노출한 채, 그 위에 로고만 붙였다.

폐허의 미학을 그대로 파는 것이다.

성수동 메르세데스벤츠 스튜디오, 벽돌 창고 외형을 유지한 건물 앞에 HERITAGE ZONE 표지판과 노란색 AMG 차량
벽돌 창고의 외형은 남기고, 안내판에는 ‘HERITAGE ZONE’이라고 적혀 있다.
무신사 스탠다드 성수 유리 외벽에 건너편 낡은 저층 건물이 반사되어 비치는 모습
무신사 스탠다드의 유리 파사드에 건너편 옛 성수동이 비친다.
성수동 KITH 매장 외관, 오래된 벽돌 벽면과 새로 낸 대형 유리창이 대비를 이루고 전선이 화면을 가로지른다
벽돌과 유리가 한 건물에서 만난다.

광고가 이사한 자리

여기서 K컬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광고 시장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신문 지면과 라디오, 전단이 광고의 무대였다. 지금은 검색과 SNS다.

노출은 기사가 아니라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일어난다. 소비자는 광고를 보고 오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으러 온다.

그러니 브랜드가 필요한 것은 매체가 아니라 배경이다.

팝업스토어는 그 배경을 파는 사업이다.

성수동 건물 외벽 전체를 덮은 대형 LED 스크린 광고
건물 전면이 통째로 화면이다.

그래서 성수동에 들어오는 브랜드는 대체로 대기업이고, 화장품과 패션이 압도적이다.

마진율이 높다. 단기 노출로도 회수가 된다. 무엇보다 사진이 잘 나오는 업종이다.

성수동 연무장길 거리 전경, 팝업스토어 배너와 브랜드 매장들이 늘어서 있고 왼쪽 끝에 기와 처마가 보인다
연무장길. ‘SUNG SU POP-UP STORE, LIMITED TIME ONLY’라는 배너가 걸려 있다.
연무장길을 가득 메운 인파와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가 병기된 상점 간판들
한글, 영어, 중국어, 일본어 간판이 한 줄에 늘어서 있다.

연무장길에 서면 한글과 영어와 중국어와 일본어 간판이 한 줄에 늘어서 있다. 구글 평점 1위를 내건 베이글 가게 앞에 외국인 관광객이 줄을 선다.

케이팝과 케이뷰티가 만든 관심이 이 거리에 그대로 착지해 있다.

디올 성수 매장과 맞은편 티르티르 건물의 대형 아이돌 옥외광고가 한 화면에 담긴 모습
프랑스 럭셔리와 K뷰티가 한 프레임에 들어온다.

디올과 티르티르가 마주 보고 선 자리는 그 장면의 압축판이다. 한쪽은 프랑스 럭셔리, 한쪽은 케이뷰티.

티르티르 건물 외벽에는 아이돌의 얼굴이 건물 높이만 하게 붙어 있다. 건물이 곧 광고판이다.

숫자로 보는 성수동 팝업

2026년 기준 성수동 가두상권 공실률은 3% 미만이다. 같은 서울의 청담동은 24%를 넘는다.

5년 전만 해도 두 상권 모두 공실률이 0이었다.

연무장길 핵심지의 권리금은 2021년 대비 15배에서 20배로 올랐다. 장기임대 평당 임대료는 2023년 대비 두세 배다.

성수역 인근 2층 건물은 팝업용 단기 임대로 하루 3천만 원까지 간다.

한 달에 열리는 팝업이 70개에서 100개. 카페거리 일대 하루 유동인구는 10만 명에 육박한다.

여기에 구조적인 함정이 하나 있다.

팝업은 계약 기간이 대개 한 달 이하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임대료 인상 제한도, 계약갱신요구권도 적용되지 않는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1년짜리 임차인보다 한 달짜리 팝업을 열두 번 받는 편이 낫다.

밀려나는 쪽이 정해져 있는 게임이다.

성동구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숲길 일대를 지속가능발전구역으로 지정해 프랜차이즈 입점을 제한했다. 임대료를 물가상승률 수준으로 올리는 건물주에게는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는 상생협약을 운영했다. 협약을 맺은 건물의 임대료 상승률이 낮게 나타났다는 결과도 있다.

다만 하루 단위로 거래되는 성수동 팝업 임대는 그 그물 밖에 있다.

고가 아래, 사람이 없는 거리

그래서 나는 마지막으로 성수역 고가 아래로 갔다.

성수역 고가 아래 수제화 거리, 왼쪽에 가죽공방 진열창이 늘어서 있고 오른쪽에 붉은 하이힐 조형물이 서 있으며 보도에 사람이 없다
왼쪽은 가죽공방 진열창, 오른쪽은 붉은 하이힐 조형물. 그 사이 보도가 비어 있다.
성수수제화 홍보관 건물과 그 앞에 설치된 대형 붉은 하이힐 조형물
성수수제화 홍보관 앞 하이힐 조형물.

성수수제화 홍보관이 있고, 붉은 하이힐 조형물이 서 있고, 가죽공방 진열창에는 가방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성동구가 정비한 거리다.

그런데 사람이 없다.

조금 전 연무장길에서는 어깨를 부딪히며 걸었는데, 여기는 보도가 텅 비어 있다.

같은 동네다. 걸어서 10분 거리다.

팝업은 큰길가 가장 좋은 자리에 서고, 이 동네를 만든 산업은 철로 밑 그늘에서 관광 콘텐츠가 되어 있다.

헤리티지라는 말은 브랜드의 안내판에 더 크게 적혀 있다. 벤츠 스튜디오 마당의 표지판에는 ‘HERITAGE ZONE’이라고 쓰여 있었다.

성수동 팝업 상권은 아직 뜨겁다. 공실률 3%가 그 증거다.

그러나 팝업이 팝업을 밀어내는 속도로 임대료가 오르고 있다. 그 속도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마진율 높은 대기업뿐이다.

언젠가 포화가 온다. 그때 남는 것이 무엇인지가 진짜 질문이다.

가로수길과 경리단길이 진 뒤 남은 것은 빈 점포였다. 성수동에는 무엇이 남을까.

나는 고가 아래 구두 공방들이 그때까지 버텨주기를 바란다. 이 동네의 힙함은 원래 저기서 나왔기 때문이다.


다음 연재에서는 성수동을 걷는 사람을 위한 안내로 돌아온다. 한국어와 영어를 함께 담은 성수동 관광지도, 첫 회는 브랜드 플래그십과 성수동 팝업 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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