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달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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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그리고 자동차라는 기계에 관한 이야기

지평선을 향해 뻗은 직선 도로

1. 더 멀리 가고 싶다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욕망

인간의 역사를 한 줄로 요약한다면, 저는 ‘이동의 역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순간부터 인간은 늘 지금 서 있는 곳보다 더 먼 곳을 바라봤습니다. 강 건너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 산 너머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수평선 끝에는 어떤 땅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인류가 수만 년에 걸쳐 지구 전체로 퍼져나간 것도, 결국 이 단순한 호기심과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더 멀리 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그 욕망 앞에는 언제나 하나의 벽이 서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단 한순간도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 힘. 바로 중력입니다.

중력은 우리를 땅에 붙잡아 둡니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우리는 몸무게만큼의 저항을 이겨내야 합니다. 아무리 단련된 사람이라도 두 다리로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는 100리를 넘기 어려웠습니다. 걷다가 지치면 쉬어야 했고, 쉬는 동안에도 중력은 우리를 그 자리에 눌러앉혔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만들어온 모든 탈것의 역사는, 사실 중력과의 오랜 협상의 기록입니다. 말을 길들인 것도, 바퀴를 발명한 것도, 마차를 만들고 배를 띄우고 철도를 놓은 것도 전부 같은 이유였습니다. 내 몸의 한계보다 더 멀리, 더 빨리 가고 싶다는 것. 땅이 나를 붙잡는 힘을 어떻게든 줄여보고 싶다는 것.

그리고 그 협상의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발명품이 등장합니다.

서울의 과거와 미래

2. 자동차 — 땅의 속박을 잊게 해주는 기계

자동차입니다.

자동차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많은 분들이 ‘빠른 탈것’이라고 답하실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자동차는 인간이 땅의 속박을 잊게 해주는 기계입니다.

생각해 보시죠. 가속 페달을 밟는 순간, 몸이 시트에 지그시 눌리는 그 감각. 창밖의 풍경이 뒤로 흘러가기 시작하는 그 순간. 그 순간만큼은 내 두 다리의 한계도,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의 한계도, 나를 짓누르던 일상의 무게도 잠시 사라집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400킬로미터. 조선시대 사람이라면 열흘 넘게 걸어야 했던 거리를, 우리는 반나절이면 도착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 몇 시간 동안 운전자는 중력을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렇게 표현해야 합니다. 잘 만들어진 자동차일수록, 운전자가 중력을 의식하지 않게 만들어 줍니다.

노면의 요철을 서스펜션이 부드럽게 걸러냅니다. 2톤에 가까운 차체의 무게를 운전자가 느끼지 못하도록 조향과 하중 배분이 다듬어져 있습니다. 속도가 올라가도 차가 노면에 착 붙어 있다는 안정감을 줍니다.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러울수록 운전자는 ‘무거운 쇳덩어리를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립니다.

그저 가고 싶은 곳을 향해, 미끄러지듯 나아갈 뿐입니다.

이것이 좋은 자동차가 하는 일입니다. 기계가 자신의 존재감을 지우고, 인간의 이동 욕망만 남기는 것. 백 년 넘는 자동차의 역사는 결국 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운전석 시점 사진, 스티어링 휠을 잡은 손, 또는 주행 중 실내 사진

3. 그렇다면, ‘잘 달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잘 달리는 차란 어떤 차인가요?”

자동차 이야기를 하다 보면 반드시 나오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대답은 숫자로 시작합니다. 최고출력 몇 마력, 제로백 몇 초, 최고속도 시속 몇 킬로미터. 물론 이 숫자들도 성능의 일부입니다. 카탈로그를 화려하게 만들어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20년 넘게 자동차 곁에서 일해온 사람으로서, 저는 다르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잘 달린다는 것은, 결국 정직하다는 뜻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렇습니다. 운전자가 핸들을 돌린 만큼 정확히 그만큼 돌아가는 차. 브레이크를 밟은 만큼 정확히 그만큼 서는 차. 가속 페달을 밟은 만큼 정확히 그만큼 나아가는 차. 시속 60킬로미터에서도, 시속 150킬로미터에서도, 마른 노면에서도 젖은 노면에서도, 차가 운전자의 의도를 배신하지 않는 차.

그런 차를 몰아본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말합니다. “야, 이 차 잘 달린다.”

그 말은 빠르다는 뜻이 아닙니다. 믿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잘 달린다’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느리다’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아닙니다. ‘잘 달린다’의 반대말은 ‘불안하다’입니다.

출력이 500마력이 넘어도, 속도를 올릴수록 핸들이 허공에 뜬 것처럼 가벼워지는 차가 있습니다. 차선을 바꿀 때마다 차체가 한 박자 늦게 출렁이는 차가 있습니다. 급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차가 어디로 쏠릴지 예측이 안 되는 차가 있습니다. 그런 차는 카탈로그의 숫자가 아무리 화려해도 잘 달리는 차가 아닙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운전자가 차를 믿지 못하는 순간, 주행은 즐거움이 아니라 긴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른발은 가속 페달 위에서 머뭇거리고, 두 손은 핸들을 필요 이상으로 꽉 쥐게 됩니다. 그 차가 가진 성능의 절반도 꺼내 쓰지 못한 채, 운전자는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어깨의 힘을 풉니다.

정직한 차는 반대입니다. 차가 내 의도대로 움직인다는 확신이 쌓일수록 운전자는 편안해지고, 편안해질수록 그 차의 성능을 온전히 누리게 됩니다. 좋은 차와 운전자 사이에는 이렇게 신뢰가 쌓입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 산악도로의 S자 굽잇길 항공사진

4. 코너링 — 중력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이용하는 것

이 ‘정직함’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코너링입니다.

직선 도로에서는 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요즘 차들은 어지간하면 직선에서 다 잘 나갑니다. 하지만 코너에 들어서는 순간, 차의 본색이 드러납니다. 설계자의 철학이, 그 차가 어떤 차인지가 굽잇길 하나에 전부 담겨 있습니다.

흔히 코너를 빠르게 도는 것을 두고 “중력을 이긴다”고 표현합니다. 멋있는 말이지만, 물리적으로 보면 사실 정반대입니다.

코너링은 중력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중력을 완벽하게 이용하는 기술입니다.

코너에서 차를 바깥으로 밀어내려는 힘은 원심력입니다. 그 원심력에 맞서 차를 궤도 안에 붙잡아 주는 힘은 타이어와 노면 사이의 접지력입니다. 그런데 그 접지력은 어디서 나올까요. 타이어를 노면에 눌러주는 힘, 바로 중력에서 나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을 수만 년 동안 땅에 붙잡아 두었던 그 힘이, 코너에서는 차를 지켜주는 힘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잘 만들어진 차는 코너에서 이 중력을 한 방울도 낭비하지 않도록 설계됩니다. 무게중심을 최대한 낮춥니다. 앞뒤 무게 배분을 이상적인 밸런스에 가깝게 다듬습니다. 코너에 진입하고, 돌고, 빠져나가는 동안 하중이 네 바퀴 사이를 이동하는데, 서스펜션이 그 하중 이동을 매끄럽게 받아내서 네 개의 타이어가 각자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정확히 하게 만듭니다.

이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진 차로 코너를 돌 때의 감각은 독특합니다. ‘억지로 버틴다’는 느낌이 아닙니다. 오히려 ‘노면에 빨려 들어간다’에 가깝습니다. 핸들을 돌리면 차의 앞머리가 정확히 그만큼 코너 안쪽을 파고들고, 차체는 한 덩어리처럼 기울었다가 코너를 빠져나오며 자연스럽게 일어섭니다.

그 순간 운전자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합니다. 나를 평생 땅에 묶어두던 중력이, 이 순간만큼은 내가 그리는 궤적을 지켜주는 든든한 파트너로 바뀌는 경험. 자동차라는 기계가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즐거움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노을 지는 도로, 또는 목적지에 도착한 차량의 여유로움

5. 다시, 인간은 왜 달리는가

정리해 보겠습니다.

인간은 중력이 있었기에 두 발로 땅을 딛고 걸을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그 중력 때문에 오랜 세월 갇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중력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는 법을 배우면서 인간은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자동차는 그 오랜 여정의 결과물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동차를 단순한 이동수단이라고 부르는 것이 늘 조금 아쉽습니다. 자동차는 더 멀리 가고 싶다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욕망이, 백 년의 기술을 거쳐 기계의 형태로 완성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관점으로 차를 바라보면, 좋은 차를 고르는 기준도 달라집니다.

숫자가 아니라 감각을 보게 됩니다. 스펙이 아니라 정직함을 보게 됩니다. 핸들을 잡았을 때 불안하지 않은 차. 속도를 올려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차. 코너에서 중력을 내 편으로 만들어 주는 차. 그런 차와 함께라면 매일의 출퇴근길도 이동이 아니라 경험이 됩니다.

글로는 여기까지입니다. 이 다음은 글로 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핸들을 잡고, 가속 페달을 밟고, 코너 하나를 돌아보는 것. 그 몇 분의 경험이 이 긴 글보다 훨씬 많은 것을 말해줄 겁니다.

궁금하시다면, 가까운 곳에서 직접 느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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